서울의 주택가를 걷다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 근처에는 주로 "마루"가 있고, 편의점이나 카페에는 "1인용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2가지 방식의 "의자"가 공존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마루"는 점점 사라지고 있고, "1인용 의자와 테이블"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편의점 본사에서 1인용 의자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제공하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동네에 마루가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해 한번쯤 짚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루란 무엇인가?
마루란 "가장 높은 꼭대기"를 의미하는데, 히트했던 아이스크림인 "호두마루"에서 마루가 바로 이 의미이다. 맛의 꼭대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무튼 각설하고, 마루는 집 안에서 "바닥과의 공간을 띄워 설치한한 널빤지"를 의미한다. 한국의 전통 가옥의 특징으로 온돌과 마루를 꼽는데, 여기서 다룰 내용은 아니므로 넘어가자.

사실 이 마루가 재미있는 점은 집 안과 집 밖의 느슨한 경계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파트를 한 번 생각해보면, 사실 집과 집 밖이 아주 뚜렷하게 구분된다. 문 열면 집 밖이고, 문 열고 들어오면 집 안인 것이다. 그러나 집에 마루가 붙어있으면 어떨까? 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집 안에 들어온 걸까? 아니면 집 밖에 있는 걸까? 물론 집 밖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그 사람은 거의 반 쯤 우리집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마루"란 집이나 가게의 안과 밖, 그 사이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느슨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루와 1인용 의자는 무엇이 다른가?
마루와 1인용 의자의 가장 큰 차이는 앉는 사람의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1인용 의자야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1인용이다. 그러나 마루는 보통 낮은 탁자같은 모습에 위에는 천이나 장판이 덧대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2~3사람이 앉을 수도 있고, 큰 마루는 10명도 앉을 수 있다.
두번째는 앉는 사람의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마루는 등받이가 없다. 따라서 막말로 누울 수도 있고, 그냥 앉을 수도 있고, 옆 사람에게 기댈 수도 있다. 마루 중앙에 탁자를 올리면 식사 장소가 되고, 화투를 깔면 도박장도 된다. 이 얼마나 다용도인가? 물론 등받이가 없어서 가끔 등이 아프긴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마루는 만들기가 쉽다. 1인용 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등받이도 만들어야 하고, 팔 걸이도 만들어야 할 것 같지만 마루는 그렇지 않다. 그냥 다리가 4개인 넓은 탁자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에 가보면, 마루를 찾기가 아주 어렵다.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안타깝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방식 자체가 변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낯선 타인들로 넘쳐나는 현대의 도시 공간에서는 서로 거리를 두고 마주볼 수 있는 1인용 의자와 테이블이 훨씬 적합하다.
마루는 오래된 시장이나 구멍가게, 혹은 아주 드물게 80~90년대의 모습을 "컨셉"으로 선택한 힙한 카페 등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신도시보다, 걷다보면 곳곳에서 낡은 장판을 덧댄 마루를 만날 수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 지나가는 아주머니, 아저씨, 아이들이 걷다가 지칠 때면 그냥 편하게 앉아서 쉬다가 다시 걸어가는 그런 모습에 나는 더 정감이 간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네 슈퍼 옆 <인형뽑기>의 추억 (1) | 2023.07.09 |
|---|---|
| 장승의 변화와 재구성을 보여주는 <소방관 장승> (0) | 2023.07.08 |
| 주택가 미니 텃밭에 관한 생각 (0) | 2023.07.05 |
| '아재 폰케이스'란 무엇인가? (0) | 2023.06.30 |
|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일회용 플라스틱 (0) | 2023.06.29 |